퇴임 후 산골로 간 이재철 목사 "거침 없이 나를 버려달라"
이재철 목사님은 ‘100주년기념교회’에 공동담임제도를 만들어 부목사들로 구성된 ‘공동담임’들을 세우고, 퇴임식도 없이 거창의 산골로 낙향해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말씀과 기도로 정진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 ‘백성호의 현문우답’에 소개된 이재철 목사님과의 인터뷰(2019년 03월 18일자)를 ‘뉴스제이’가 소개합니다. [취재 :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 [편집자駐]
【뉴스제이】 “여러분은 지금부터 이재철을 거침없이 버리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새로운 차원의 은혜를 원하신다면 이재철을 버리시되, 적당히가 아니라 철저하게 버리셔야 합니다.”
2018년 11월 18일 이재철 목사는 퇴임하던 마지막 주일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100주년기념교회의 교인 수는 1만 3000명이었다. 허울뿐인 명목 교인 수가 아니라 실질적인 출석 교인 수다.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서 13년 4개월 동안 담임목사를 따르던 교인들에게 그는 “나를 철저하게 버려달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어 교회를 책임질 ‘4인 공동 담임목사들’에게 힘을 실어 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퇴임 설교가 끝나고 이 목사는 교인들과 작별했다. 큰 교회를 일군 담임목사들이 퇴임식 때 관행적으로 받는 수억 내지 수십억 원에 달하는 전별금도 없었다.
이재철 목사는 “한반도 어느 곳이든 평당 10만 원짜리 땅이 나오는 곳을 생의 마지막 정착지로 삼아서 보내겠다. 굳이 ‘평당 10만 원’이라고 특정한 이유는 그 정도 가격이라야 저희 부부 형편에 맞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어떤 형태의 공식적인 퇴임식도 없었다. "목사에게 퇴임식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교인들은 주일 마지막 4부 예배가 끝날 때까지 귀가하지 않고 기다렸다. 마지막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는 이 목사를 배웅하며 교인들은 가슴으로 울었다. 그가 걸어왔고, 또 걸어갈 걸음걸이가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드물고도 귀한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 목사는 지인들과 작별 인사를 마치고 서울을 떠났다. 차를 타고 경상남도 거창군의 산중턱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1시30분이었다. 이 목사 부부는 거창군 웅양면의 해발 560m 산동네에 ‘평당 10만 원짜리 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집을 지었다. 처음에는 컨테이너 2개 동을 갖다 놓고 살 참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교회 교우 중에 건축설계사(지음재 아키텍츠 이재성 대표)가 있었다. 그가 “제 아내도 투병 중이다. 암 투병 중인 목사님이 산골의 추운 집에서 살면 어떡하느냐”며 외풍이 없는 집을 기어코 설계해 주었다. 한사코 거절하던 이 목사도 끝내 못이기고 수락했다. 이재철 목사는 2013년 암 수술을 한 뒤 방사선 치료를 31차례 받은 바 있다. 물론 집의 시공 비용은 모두 이 목사 부부가 댔다. 그것도 대출을 받고서야 겨우 해결했다. 남은 대출은 이 목사의 사모가 출판사 월급으로 갚아나갈 참이다.
담임목사 시절에도 그는 자신의 월급을 교인들에게 모두 공개했다. 담임목사와 부목사간의 월급 차이는 고작 10만원이었다. 퇴임하던 해에는 후임 공동 담임목사들과 자신의 월급이 똑같았다. 그의 목회는 검소했다. 그러나 영성은 풍성했다.
지난해(2018년)부터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이재철 목사는 몇 번이나 거절했다. “나는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일 뿐”이라며 조용한 마무리를 다짐했다. 그렇다고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그가 길어 올리는 ‘영성의 울림’이 우리의 아픔을 적시고, 우리의 목마름을 적시고, 우리의 삶을 적셔주기 때문이었다. ‘삼고초려’를 거듭한 끝에 결국 거창의 산골로 내려갔다.
15일 김천구미역에서 1시간 가까이 차를 달렸다. 진눈깨비가 내렸다. 굽이굽이 산골짜기였다. 산 중턱에 자리한 마을 어귀에는 500년 된 느티나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40가구가 사는 이곳에서 이 목사 부부는 ‘마을 주민’으로 살고 있었다. 마을 회의에도 꼬박꼬박 참석하고, 동네 주민들과 왕래하며 생활했다. 이 목사의 집에는 담벼락도 없었다. “마을 사람 속으로 녹아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재철 목사에게 뒤늦게 물었다. 왜 자신을 거침없이 버리라고 했는지.
Q : 퇴임 설교에서 왜 “이재철을 거침없이 버리라”고 했나.
A : “교회를 개척한 담임목사가 거침없이 떠나가는 ‘자기 버림’이 없으면 어찌 되겠나. 결국 걸림돌이 된다. 일평생 자신이 헌신하고 섬기던 교회에 걸림돌이 되고 만다. 자신이 섬기던 교인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일. 그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나.”
이 목사에게 이런 식의 ‘자기 버림’은 처음이 아니다. 1988년 서울 정신여고에서 주님의교회를 개척해 출석 교인 3200명의 묵직한 교회로 키운 뒤에도 “딱 10년만 하겠다”는 첫 약속을 지키고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았다. 스위스 제네바의 한인교회에 가서도 그랬다. 3년에 걸쳐 미자립 교회를 자립 교회로 탈바꿈시킨 뒤에 이 목사는 거침없이 교회를 떠났다. 자기 버림의 뿌리를 묻자 이 목사는 책장에서 성경을 꺼냈다. 요한복음 16장7절이었다.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기 직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성령)가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이오,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Q : 무슨 뜻인가.
A : “예수님께서도 떠나셨다. 떠남이 제자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하셨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예수님이 떠나가야 비로소 제자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마련된다고 보았다. 하물며 담임목사가 퇴임 후에도 교회에 머물면 어찌 되겠나. ‘원로목사’라는 이름으로 계속 머물면 그 교인들에게 유익하겠나, 아니면 불이익을 주겠나. 답은 명약관화하다. 퇴임하면 거침없이 떠나야 한다.”
Q : 그런 사례가 많지는 않다. 교회가 클수록 원로목사로 남아서 ‘상왕(上王) 노릇을 하거나, 심지어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하기도 한다. 왜 그런가.
A : “‘진정한 버림’을 모르기 때문이다. 왜 버려야 하나. 버려야만 우리가 얻기 때문이다. 버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가진 게 ‘전부’다. 시간이 지나면 썩게 마련이다. 그러나 버려본 사람은 안다. 버리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것을 갖게 된다. 그래서 버려본 사람이 또 버리게 된다.”
이 말끝에 이 목사는 “1류 도공과 3류 도공의 차이가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Q : 그 차이가 뭔가.
A : “둘 다 진흙으로 그릇을 빚어서 가마에 집어넣는다. 그런데 1류 도공과 3류 도공은 버리는 개수에서 차이가 난다. 1류 도공은 정말 뛰어난 걸 얻기 위해 끊임없이 버린 사람이다. 사람들은 빼어난 작품 한 점만 본다. 그러나 그 작품 뒤에는 수많은 깨어짐의 과정, 수많은 버림의 과정이 있었던 거다.”
Q : 사람들은 ‘버림’을 힘들어한다. 왜 그런가.
A :“그게 다가 아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걸 일종의 ‘종잣돈’이라 생각한다. 그걸 잃으면 모두 잃는다고 믿는다. 그런데 막상 버려보면 알게 된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 버려야만 새로운 경지로 갈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영성도 도공의 그릇과 똑같다.”
Q : 서울을 버리고 거창에 왔다. 도시를 버리고 산골에 왔다. 무엇이 열렸나.
A : “대나무숲의 파도 소리다.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가 친다. 아내와 나는 그걸 ‘죽림(竹林) 파도’라고 부른다. 밤에 들어도 좋고, 새벽에 들어도 좋고, 낮에 들어도 좋다. 이곳에 와서 내게 새롭게 열린 건 하늘과 땅이다. 한편으론 감사하고, 한편으론 경이롭다. 박목월 시인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고 노래했다. 예전부터 그 시를 참 좋아했다. 도시에 살면서 밤하늘에 불현듯 구름과 달이 보이면 ‘저걸 보고 그렇게 표현하셨나’ 싶었다. 그런데 여기에 오니까 알겠더라. 해발 560m 산골이다. 구름이 우리집 지붕 위로 간다. 이곳에 세찬 바람이 불면 구름이 달려간다. 그때 구름 대신 달을 보면, 달이 뛰어간다. 아, 그래서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구나. 이곳에 온 지 넉 달이 안됐는데, 구름에 달이 달려가는 걸 숱하게 봤다.”
이 목사는 산골에 내려와서 쓴 자작시를 한 편 보여주었다. 제목이 ‘바람’이었다. 그 시는 거창의 산골에서 산과 나무와 대숲 소리로 자신을 관통하며 쉼 없이 불어대는 ‘하나님의 숨결’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목사는 “내가 100주년기념교회 목회를 안 했거나, 은퇴 후에 합정동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이렇게 하늘과 땅을 되찾는 인생의 마무리를 할 수 있었을까. 그걸 생각하면 참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삶이 ‘모래시계’라고 했다.
Q : 인생이 왜 ‘모래시계’인가.
A : “아날로그 시계는 초침과 분침, 시침이 동일한 시계판 위를 무한반복한다. 디지털 시계는 0부터 59까지 숫자가 무한반복된다. 그 속에서는 나의 지나간 날이 안 보인다. 내 나이와 상관없이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영원히 살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모래시계는 다르다.”
Q : 어떻게 다른가.
A : “생김새부터 다르다. 삼각형 모양의 두 유리병이 역방향으로 맞물려 있다. 나는 1949년 4월에 태어났다. 한국 나이로 71세, 날수로 따지면 69년11개월을 살았다. 내 눈에는 보인다. 내 유리병에 69년11개월은 텅 비어 있다. 유리병의 윗부분에 남아 있는 모래의 양보다 빈 공간이 훨씬 더 크다. 그래서 내일 아침, 블라인드를 올려서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또 감격할 것이다. 내 모래시계의 윗부분에 또 하루의 모래가 남아 있구나. 시편 8편은 다윗이 쓴 시다. 다윗은 하늘과 땅에 가득 찬 아름다움과 주의 영광을 노래했다. 그리고 ‘사람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생각하시며’라고 묵상했다. 나는 ‘재철이가 무엇이기에 재철이를 생각하시며’라고 묵상한다. 그러니 폭풍이 친다고 문제겠나. 비가 내린다고 문제가 되겠나. 이 거대한 자연이 내게 삶에 대한 겸손과 삶에 대한 감격을 일깨워주고 있지 않나. 서울에서 계속 살았다면 맞지 못했을 날들, 상상하지 못했을 날들을 나는 오늘 하루도 맞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 길, 이재철 목사의 자작시 '바람'을 꺼내 읽었다. 거기에는 '거침 없이 버려본' 이가 노래하는 버림 이후의 영성이 오롯이 흘렀다. 그것은 바람보다 거세고 , 바람보다 깊고, 바람보다 고요한, 그런 바람이었다.
[거창 산골에서 쓴 이재철 목사의 자작시]
바람
이재철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하고,
로트레아몽은
좌절과 절망을 노래했지
하지만 나는,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도
바람이 분다
그래서 오늘도 산다
바람,
내
생명의 근원
지혜의 숨결
(2019년 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