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다’(think)와 ‘감사하다’(thank)는 같은 어원/
청교도, 먼저 예배당 세우고, 학교, 주택 세워 감사/
【뉴스제이】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천국의 주인공입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는 천국 언어입니다.
한국교회는 미국 선교사님들로부터 선교를 받아 11월에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우리나라 추석과 겸하여 지킵니다. 영국 청교도들이 탔던 메이플라워호(The Mayflower, 180톤급의 배)는 1620년 9월 6일에 영국의 프리퍼드(Purfleet)에서 출항하여 102명의 청교도(Puritans) 이민자들을 태우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인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이 먼저 도착한 곳은 프로빈스타운(Provincetown)인데 이곳에서 한달 이상 있다가 같은 해 12월 21일에 도착한 항구(Harbour)의 이름을 영국에서 출발한 항구의 이름을 따서 플리머스(Plymouth)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에 도착 기념 바위가 있습니다(Plymouth Rock, 1620).
또 10분 거리의 북서쪽 언덕에는 신앙의 선조들의 기념탑이 있습니다. 미국 메사츄세츠주 보스턴 남쪽에 플리머스가 있습니다. 항구에서 15분 남쪽으로 내려가면 플리머스 플랜테이션 박물관(Plimoth Plantation Museums)이 나오는데 당시 청교도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먼저 예배당을 세우고 그후 학교와 주택을 세우며 추운 겨울 지냈습니다.
순례자들은 스콴토(Squanto)를 비롯한 원주민들로부터 옥수수 재배법과 낚시 같은 실제적인 생활 기술을 배워서 1621년 가을 제법 풍성한 가을걷이를 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축제를 올려 드리게 되었고 실질적인 도움을 준 원주민인 왐파노억(Wampanoag) 부족을 초대합니다. 추장 마사소이트(Masssoit)는 90여명의 부족과 같이 참석하고 순례자들은 힘닿는 대로 융숭한 대접을 하여 선린의 관계를 돈독히 하였습니다. 이때 옥수수, 물고기, 칠면조(Turkey), 콩, 빵으로 풍성한 식탁을 차렸습니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을 공식 축일로 정한 것은 1817년 뉴욕 주가 처음이고, 이어 남북전쟁 중인 1863년 링컨 대통령이 11월의 넷째 목요일을 공식적인 추수감사절로 지정하여 시행한 것으로부터 전국적 감사제로 자리 잡았고 지금 미국에서 가장 큰 축제가 되었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느부갓네살의 금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하고 풀무불에 던져짐을 두려워하지 아니했습니다(그렇게 하지 아니할지라도 감사. 단 3:18).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질 것을 알면서도 늘 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그럼에도 감사. 단 6:10). 벳새다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하나님께 감사하니 군인수만 5000명(실제 숫자는 2-3만명)이 배불리 먹게 되었습니다(매일매일 감사, 요 6:11). 나환자였던 사마리아 청년이 다시 예수님을 찾아 와 감사를 드렸습니다(그래서 감사, 눅 17:1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래도 감사. 빌 4:6).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감사하는 것이 건강한 신앙생활 모습입니다(범사에 감사, 살전 5:18).
영국의 격언에는 “지옥이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 찬 곳이고 천국이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곳 Hell is a place full of ungrateful people, Heaven is a place full of grateful people.”이란 말이 있습니다. ‘생각하다’(think)는 단어와 ‘감사하다’(thank)는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생각 차이입니다. 생각하기 나름인데 몇초만 생각해도 불평이 감사로 바뀝니다.
사탄은 불평의 씨앗을 심지만, 성령님[성신님]께서는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차게 하십니다. 로마서 1:21절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감사와 찬양은 행복의 지수를 높여줍니다.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순간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늘 마음이 우울하던 사람이 즐거워 하게 되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되고 활력이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의 삶은 어릴 때부터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살해당해 고아로 자랐고, 청년 시절에는 혁명당 활동을 하다 잡혀서 사형 선고를 받고 시베리아로 유배가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시베리아에서 해방되고 나온 후, 결혼했는데 얼마 있지 아나 아내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천신만고를 겪고 재혼을 하여 첫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병들어 죽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자신도 간질병에 걸려 평생을 고통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질병을 ‘거룩한 병’이라 불렀습니다.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모든 일에 감사했습니다. 감사를 안하고는 정신적으로 견딜수가 없었기 때문에 감사를 통해서 그 신앙이 더 굳어지고 깊어졌다고 간증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속에서 지은 작품들이 명작이 되었습니다.
솔제니친(1918~2008)은 시베리아 정치수용소에서 11년의 고통 가운데 암이 걸려서 죽음에 이르자 예수님을 믿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는 출옥한 후에 수용소의 참상을 폭로하는 소설인 <수용소 군도>를 써서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책 속에서 솔제니친은 “감방이여 고맙소”라고 고백하면서 하는 말이 “내가 시베리아 감방에서 11년 동안 갖혀 있지 않았으면 결코 <수용소 군도>라는 책을 짓지 않았을 것이요. 그 다음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했을 것이다”고 한 것입니다. 역경이 오히려 축복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 예수를 믿고 감사할 줄 아는 삶을 가졌기 때문에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71)
골로새서 3:16~17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감사와 찬양’은 하늘나라의 문이 열리고 하늘나라 궁전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시편 100:4~5절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하나님의 문에 들어가고 찬송하면 하나님의 궁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윤사무엘 박사(겟세마네신학교 총장 / 로이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