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명 할아버지를 만났고/
케이크도 입에 넣어드렸고. 팔짱을 끼고 걸어갔는데..../
"눈먼 할아버지로 오신 예수님!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만나 주셔서 감사하고..."/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
【뉴스제이】 몇 달전, 형님 목사님께 고급스런 조각 케이크 4개를 준비해, 섬기고 싶어 전화를 드렸습니다. 지인이 카페를 오픈 했는데, 셰프가 유명 호텔 출신으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차원 높은 케이크를 만든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지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매상을 올려주고 싶어 겸사겸사 케이크를 샀습니다.
그런데 주일 저녁 예배 후 집으로 들어가셔서, 전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냉장고에라도 넣어 드리고 싶어 교회를 향해 가던 길을 그냥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인도하는 데로 가는데 차도 막히고, 네비게이션은 길을 좀 돌려, 먼 거리로 안내했습니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그것도 감사했습니다.
교회에 도착해 교회 앞에 주차를 하고 수위실로 향했습니다. 젊은 청년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냉장고 유무를 확인했지만, 수위실에 냉장고가 없어 케이크를 들고 나오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내 차에 기대어 서 계셨습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케이크를 할아버지 드렸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이 케이크 좀 드셔보세요?”
“음, 음.”
그러시더니 손으로 케이크를 짚으시려고 더듬거리셨습니다. 눈이 잘 안보는 할아버지셨습니다. 나는 케이크를 크게 잘라, 포크로 찍어 입에 넣어드렸습니다.
“할아버지! 드셔보세요? 맛있지요?”
“음, 음. 맛있네.”
배가 고프신지 맛있게, 허겁지겁 드셨습니다. 할아버지를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싶었습니다. 팔짱을 끼고 대문의 색깔, 길에 버려진 냉장고 등을 이정표 삼아, 할아버지에게 물으며 길을 안내받아 할아버지 집을 찾았습니다. 막다른 골목의 맨 끝집이었습니다. 가족이 있는 지 여쭤보았는데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문을 열자 심한 냄새가 코를 질렀습니다. 식탁에 앉게 해드리고 다시 케이크를 잘라 할아버지 입에 넣어 드렸습니다. 맛있게 드셨습니다.
“할아버지! 맛있으세요?”
“음, 음. 좋네.”
“이젠, 할아버지가 직접 드세요?”
나머지 3개의 케이크도 잘 보이시는 곳에 놓고 집을 나왔습니다. 집을 나오며 참 감사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같은, 눈이 잘 안보이시는 할아버지를 섬긴 것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고, 나그네를 대접한 지극히 작은 자를 도운 것’이 예수님 자신을 도우신 것이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도 할아버지가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러면서 “혹시???”하는 생각과 고백을 하며 미소도 지었습니다. 형님 목사님께 할아버지 섬긴 것을 말씀드렸더니 잘했다고 칭찬한 하시며 “예수님을 섬겼을지도 모르는 목사님!”이라며 미소 담긴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다음에 교회 쪽으로 가면 할아버지를 찾아뵙고, 안부를 묻고, 더 섬기고 싶었습니다.
몇주 전, 형님 목사님과 함께 ‘도시와 농촌간 강단교류’를 시행하시는 자리에 동행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 예약에 맞춰 공항으로 출발하는 시간보다 1시간 넘은 여유를 가지고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이유는 그 할아버지를 찾아뵙고 싶어서였습니다.
교회 근처에 도착해 할아버지 집을 찾아갔습니다. 기억이 났습니다. 교회 앞에서 직진하다가, 우측 골목으로 돌아서, 다시 왼쪽 골목으로 가는 길 옆에 알루미늄으로 만든 작은 출입문이 보이고, 왼쪽에 녹색 대문집이 보였습니다. 그 골목길로 쭉 끝까지 가면 할아버지 집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집을 포함한 그 지역이 재개발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내가 혹시 잘못 알았나 싶어, 다른 골목으로도 가보고 주변 여러 곳을 돌아보았지만 그 골목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돌아서 나오는데 알루미늄 작은 문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급히 나와 걸어가기에 할아버지에 대해 물으려 하다가 “그냥 말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앞에 가던 아주머니가 뒤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여기 아랫집 눈이 잘 안보이시는 할아버지 어디로 가셨어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의 말에 너무 놀랐습니다. 놀랐다기보다 어리둥절하고 기절 할 뻔했습니다. 아주머니가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그런, 할아버지는 안계십니다.”
“아니, 여기 맨 아랫집 할아버지였는데요?”
“그런 할아버지는 이 동네 없어요.”
‘이게 무슨 일일까?’ 나는 너무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럼, 할아버지가 천사이었나?’라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지었습니다. 나는 성경을 열어 마태복음 25장을 읽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25장 35절로 40절을 주목했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태복음 25:35-36)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40)
나는 분명 할아버지를 만났고, 케이크도 입에 넣어드렸고, 팔짱을 끼고 걸어갔는데, 그 할아버지가 안계시다니요? 할아버지가 누구신지 더 궁금해졌습니다. 정말 천사라고 되는 것인지 몇번이고 나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살던 집 근거지도 없어지고, 할아버지 집에서 10m 정도 떨어진 집에 사는 이웃 아주머니가 할아버지를 모른다고 하니, 몇번이고 물어봐도 그런 할아버지가 없다고 하니, 그렇다면 그 할아버지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나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천사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긴 것이 예수님을 섬긴 것이라는 말씀도 믿습니다. '눈먼 할아버지는 누구란 말인가?' 나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여러번 질문하고 또 묻습니다.
"눈먼 할아버지는 누구셨을까? 설마....."
나관호 목사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세계선교연대’ 경기북부 노회장 /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 / '뉴스제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