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예배]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 (호세야 11-12장) 
[읽는 예배]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 (호세야 11-12장) 
  • 윤사무엘 목사
  • 승인 2025.02.07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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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다음 설교문은 2025년 2월 9일 (주현절 다섯째 주일), 대한예수교장로회 로이교회(인천 송도) 주일예배용입니다. 기도로 주님께 열납되는 주일예배를 준비합시다. 1월은 '신년의 달'로 지키며, 다음 예배 자료를 나눕니다. 샬롬샬롬!!! (로이교회 / 합동). [참조 : 본 설교문은 믿음의 동역자 브루쉘한인교회 안익선 목사님의 강해설교, 호크마 주석서 참고, 인터넷 자료 활용]

예배를 회복하는 성도(6)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 (호세야 11-12장) 
    “With Cords of a Man, With Bands of Love” (Hosea 11-12)

본문: 호세아 11:1-12:14
요절: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ㄷ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호 11:4)

주제: 사람은 사랑의 존재이니 하나님의 사랑의 줄에 매여 주님만 따르자
교독문: 76번(요한 1), 예배의 부름: 히 11:6

찬송: 43장(통일 57장), 208장(통 246장), 219장(통 279장)
일자: 2025년 2월 9일 (주현절 다섯째 주일)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Yun Samuel (로이교회 Roi Presbyterian Church)
[예배시간: 새벽기도(월-금) 오전 6시, 토요아침 및 원어강의 오전 9시 
              주일 오전예배 11시, 오후예배 12:30]
[교회주소: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타워대로 323 (센트로드B/D B동) 3307호, 
우편번호: 22007, 지하철 인천 1호선 국제업무지구역 1-2번 출구, Office B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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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사무엘 목사

오는 금요일(2월 14일)은 Valentine’s Day입니다. 사랑의 편지로 명성을 떨친 순교자 발렌타인(Valentinus of Rome, AD 226 ~ 269년)이 투옥 중 순교한 날을 기념하는 날로, 전세계적으로 연인, 부부, 인류사회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로 사랑 회복 운동을 문화적으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초콜릿, 사탕, 꽃, 카드 등 선물을 나눕니다. 많은 미국 교회에서는 교회에서 이 행사를 가집니다.

발렌타인데이의 유래에 대해서는 3세기 보편교회 시절의 성 밸런타인 주교가 군인들의 군기문란을 우려하여 미혼 남자들을 더 많이 입대시키기 위해 결혼을 금지하던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의 명령을 어기고 군인들의 혼인을 집례했다가 순교한 날인 2월 14일을 기념하기 위한 축일이라고, 세계 각지에서 이날은 남녀가 서로 사랑을 맹세하는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다음 주일(2월 16일) 아침 7시 40분과 2월 23일 주일 아침 7시 40분에는 “땅끝 선교사 도마가 한국에 오다”에 대한 일요다큐가 SBS에서 방영합니다(출연: 윤사무엘 목사, 전재규 총장, 감독:이인수). 많은 시청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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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은 호세아 11-12장을 강해합니다. 11장 4절이 요절입니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사랑의 줄”로 말씀하십니다. 호 4:1-14:9은 모두 9개의 설교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늘은 일곱 번째 설교를 읽습니다. 인간적인 계책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강조합니다. 배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호 11:9) 
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4:1-5:4), 
② 인간의 교만을 지적함(5:5-6:3), 
③ 인애가  없으므로  망함(6:4-7:7),
④ 세속과 혼합된 죄를 책망함(7:8-8:14),
⑤ 부패의 죄로 징벌을 받음(9:1-17),  
⑥ 이스라엘의 두 가지 큰 죄(10:1-15), 
⑦ 인간적인 계책을  책망함(11:1-16, 12:1-14)  
⑧ 우상숭배의 죄악을 다시 책망함(13:1-16), 
⑨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약속(14:1-9) 등입니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심 The Lord’s Love for Israel (호 11:1-11)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2) 대언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5)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6)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7)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분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분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10)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11)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호세아 1장부터 3장까지는 정절을 지키지 않은 아내를 끝까지 사랑하는 남편의 사랑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신실하게 사랑하심을 표현한 것이라면 호세아 11장은 배역한 아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절.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כִּי נַעַר יִשְׂרָאֵל 키 나아르 이스라엘 when Israel was a child)’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하시사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지(창 17:7-14) 500년 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 출애굽 사건을 말합니다(출 1:1-7). ‘내가 사랑하여’(וָאֹהֲבֵהוּ 와-오하베후 and I loved him) 하나님의 사랑이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켰습니다. 부성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וּמִמִּצְרַיִם, קָרָאתִי לִבְנִי 우-미쯔라임 카라티 레브니 and out of Egypt I called My son.) 여기에서 '내 아들'이란 이스라엘을 가리키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신 사실을 말합니다(출 23:37-42). 특별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당신의 아들로 부르신 것은 출 4:22-23(“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에 나오듯이 모세를 부르실 때 이미 말씀하신 것입니다.

호 11:7에서는 ‘내 백성’(עַמִּי 암미 my people)이라고 부르십니다. 이 구절(호 11:1)은 예수님께서 헤롯의 살인으로부터 도피하여 애굽으로 피신하실 때 인용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대언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 2:15) 그래서 ‘내 아들’이란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적용되고 예수님(메시야)께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시대에 사자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구원받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저희가 사자처럼 소리를 발하시는 여호와를 좇을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발하시면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 저희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저희로 각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호 11:10-11) ‘내 아들’이라는 표현은 삼중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표적으로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신약시대의 실현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구원받은 신약의 교회를 모두 의미하는 것입니다. 호세아 대언자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택하신 백성을 주권적인 은혜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2-3절. “대언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부를수록 점점 멀리 떠나고 맙니다. 탕자의 모습입니다. 한국 초기 선교사인 배위량(William Baird, 1862-1931)목사님의 사모님(Mrs. Annie Laurie Baird 安愛理, 1864-1916)은 남편이 멀리 출장가서 전도하던 날이 많아 기다리면서 당시 풍전등화 같았던 우리나라 국민들이 하나님의 품으로 속히 돌아올 것을 기도하면서 찬송가 387장(통합 440장)을 작사했다고 합니다.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도 외로워 정처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 주여 지금 내게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

‘바알들에게 제사하며’(לַבְּעָלִים יְזַבֵּחוּ 라-바알림 여짜베후 they sacrificed unto the Baalim) 호 2:8,13,17 등에서도 지적된 내용인데,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광야 시절에서부터 시작하여(민 25:1-3)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후까지 계속해서 바알을 숭배했습니다(왕상 16:31,32, 22:53, 17:16). ‘아로새긴 우상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וְלַפְּסִלִים יְקַטֵּרוּן 여-라파시림 여카테룬 and offered to graven images) 나무나 돌 등으로 아로새긴 우상들에게 분향하였는데(레 26:11, 민 33:52), 아세라나 바알 우상 등도 이런 재료로 새겼습니다(왕상 14:15,23, 왕하 10:27). 3절.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걸음마를 가르치시고 팔로 안아 양육하시며 치유하셨지만 북왕국 이스라사랑의 손길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것을 의미합니다(신 1:31, 민 11:12).

4절.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בְּחַבְלֵי אָדָם אֶמְשְׁכֵם בַּעֲבֹתוֹת אַהֲבָה 브-하브레이 아담 앰쉐켐 바-아보토트 아하바 I drew them with cords of a man, with bands of love;) ‘사람의 줄’은 말이나 노새 등 짐승을 제어하여 끄는 줄과 반대되는 말로서 사랑과 은혜로 이끄는 줄이라는 뜻을 말합니다(시 32:9). ‘사랑의 줄’은 하나님의 언약을 말합니다. 여기서 한국말의 ‘사람’과 ‘사랑’이 상호 연관되는 단어이며 사람은 사랑의 존재이고, 사랑은 사람에게 완성됨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어로 아담과 아하브를 대비 시켜 준 것은 서로 연관이 있다는 뜻인데 아하브는 히브리어 알파벳 첫 두 자음이 헤이(연결, 풀, 교착,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아하브 즉 사랑이란 남자와 여자 사이에 뗄수 없는 끈끈한 관계를 말합니다. 영어에도 love와 live가 같은 자음으로 To love is to live; to live is to love.입니다.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they that take off the yoke on their jaws’ '벗기는 자'(מְרִימֵי, 므리메이)란 '롬'(רוֹם, 높이다, 들어 올리다)의 사역형 분사로서 짐승에게 지웠던 멍에를 느슨하도록 뒤로 들어올리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이 짐승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서 지웠던 멍에를 느슨하게 풀어 음식 등을 편히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같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제하기 위해 매어 놓았던 멍에를 풀어 가볍게 하신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F.Keil, J.Wolfendale). 4절의 뜻을 몇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draw).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을 끌어오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것이 필요하냐면 택한 백성이라 해도 그 본질상 하나님께로 오려하지 아니하고 멀어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사랑의 줄입니다. 

둘째, “사람의 줄”(cords of man)을 사용하십니다. 사람들을 도구로 사용해서 이끌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대언자나 목회자나 전도자들을 통해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이끌어 주시는 7가지 인간적인 도구를 말씀했습니다. ① 불신자들은 참된 성도들의 행복한 삶(happiness)을 보고 예수님께 나온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니까 행복하구나 해서 나도 행복해지려면 예수님을 믿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안정된 삶(security)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언제 죽어도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움도 없고 영혼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영혼에 닻이 없고 요동하는 물결 같이 불안한 것입니다. ③ 성도들의 거룩한 삶(holiness)을 보고 예수님께 나옵니다. 불신자들이 서로 비교해보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는 집에 가면 빛이 있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집에 가면 늘 어둡고 부부싸움만 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④ 성도들이 베풀어준 자비(mercy)에 감사해서 이끌림을 받습니다.

⑤ 기독교가 지니는 합리성(reasonableness)에 이끌립니다. 기독교는 합리적인 복음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합리적입니까? 천지가 우연히 생겼다는 것이 합리적입니까? 사람을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것이 합리적입니까? 원숭이가 꼬리가 떨어지고 갑자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합리적입니까? 제가 다른 종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연 무엇이 합리적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진화론은 도무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원숭이는 지금 봐도 원숭이고 몇 천 년이 지나가도 여전히 원숭이일 것입니다. 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사 내 죗값을 갚으셨다는 큰 사랑(love)과 ⑦ 성도들이 받는 축복과 특권(privileges)에 이끌리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예수님을 믿더니 죽을병에 걸렸다 살아났다는 이야기나 그렇게 악하게 살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더니 착하게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사람의 줄로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께.....

셋째, “사랑의 줄”(band of love)을 사용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강압적인 방법으로 예수님을 믿게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가 때린다고 예수님을 믿은 분이 계십니까? 혹은 교회 안 나오면 누가 칼로 찌른다고 해서 교회 나오는 분이 계십니까? 기독교는 그런 방식으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슬람교는 다릅니다. 이슬람교는 처음부터 무함마드가 한 손에는 칼을 쥐고 한 손에는 코란을 들고 믿지 않으면 칼을 받으라고 해서 전파된 것입니다. 

넷째, 그 목에서 멍에를 벗겨주십니다. 사람들은 태어나면 멍에를 지고 있습니다. 죗값으로 말미암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지옥의 끈이 매어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두려움의 멍에가 있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무지의 멍에를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 죄를 빌미로 해서 악령들이 우리 영혼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술 먹으라고 시키면 술 먹고 바람 피우라고 시키면 바람 피우고 도적질하라고 시키면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이 멍에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벗을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벗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이 멍에를 벗겨주실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들에게 먹을 복음의 양식, 진리의 양식을 주셔서 마음껏 먹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4:4) 우리 몸은 떡을 먹어야 삽니다. 그러나 영혼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왠지 쓸쓸하고 힘이 없고 좌절이 되며 용기가 없는 사람은 영혼이 배고파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셨는데도 게을러서 안 먹으니까 영혼이 배고프고 힘이 없는 것입니다. 공연히 쓸쓸하다고 바닷가를 찾아가거나 한강에 간다고 해서 영혼에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의 힘은 골방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이 1863년에 노예해방을 선언했습니다. 노예해방을 하기 전 링컨 대통령이 노예시장에 나가보니 사람들이 노예들을 짐승취급하며 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흑인 여자 한 명을 보고 링컨 대통령이 샀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너는 이제 자유인이니 네가 가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이 링컨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그러니까 링컨이 “그렇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보아도 됩니까?” 링컨이 또 “그렇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어도 됩니까?” 링컨은 여인의 질문에 계속해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대통령님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당신을 섬기고 내 평생 당신을 수종하며 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야 합니까? 두려움 때문에 그렇습니까? 아니면 누가 협박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목사가 감언이설로 속였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반역하는 기질을 가진 나를 사람의 줄과 사랑의 줄로 이끌어서 나의 멍에를 벗기시고 내게 먹을 것을 주시고 내가 돌아갈 천국을 예비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 우리 성도의 마땅한 마음인 줄로 믿습니다.

5절.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저희가...못하였거늘’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패망하여 애굽에서보다 훨씬 가혹한 종살이를 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앗수르 사람이...될 것이라’ 이스라엘이 앗수르인들에의 침공을 받고 포로로 잡혀가리라는 뜻을 함축합니다. 이는 B.C.722년에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왕하 17:3-6, 18:9-12).
6-7절.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분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치며'(חָלָה, 할랄)의 기본어 '훌'은 '춤추다', '빙빙 돌다', '꼬다'의 뜻을 지니는 바, 6절은 칼로 행해지는 형벌의 모습을 암시합니다(삼하 3:29;렘 23:19).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계책'(מֹּעֲצוֹתֵ, 모에쪼트)의 어근 '야아츠'(충고하다, 궁리해내다)는 10:6의 '계의'(עֲצָת, 에차 counsel)의 어근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순종하고 의뢰하는 대신 벧엘과 단 등에 우상 송아지를 세워놓고 의뢰하려 했던 것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7절. ‘결심하고...물러가나니’ '결심하고'(תְלוּאִים, 테루임)는 기본어 '타라'의 복수 수동태 분사형입니다. '타라'의 의미는 '매달리다', '집착하다', '치우치다'입니다. 그리고 '내게서 물러가나니'(לִמְשׁוּבָתִי, 리므슈바티)란 1인칭 접미사가 붙은 명사(기본 명사, ְשׁוּב, 메슈바, 배교)에 전치사가 결합된 단어로서 '나에게서 물러가는 것(나를 떠나가는 것)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떠나는 일에 매달려 집착해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입니다.

8-9절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분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아드마(Admah)...스보임(Zeboim)’ 각각 '붉은 흙', '영양'(羚羊)의 뜻으로서 소돔과 고모라 근처에 있는 성읍들입니다(창 10:19, 14:2,8).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 당했습니다(신 29:23). 이 성읍들이 언급된 것은 이스라엘이 철저하게 심판받아 패망되지는 않을 것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긍휼’ '긍휼'이란 '라함'(רַחֲמִ)으로서(삼하 24:14, 느 9:31. 시 40:11, 119:156, 렘 16:5, 단 9:9) 엄마의 품에 해당하는 모성애를 말합니다(시 103:13, 사 13:18, 49:15). 그러나 본 구절에서는 '니훔'(נִחוּמָ)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나함'(נָחַם, 숨쉬다, 동정하다, 위로하다)에서 유래되어 '위안 compassion', '위로 comfort,' ‘뉘우침들 repentings’의 뜻을 말합니다. 

9절.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하나님께서는 거짓하거나 변개(變改)치 아니하시고 한번 선택하시고 목적하신 바를 끝까지 이루시는 분이십니다(민 23:19, 삼상 15:29, 말 3:6).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애굽에서 인도하사 구원하셨으므로 끝까지 멸망치 않도록 보호하실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나는...거룩한 자니’ 전반절과 연계되는 말로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언약하시고 그들 가운데 임재하시는 분이시므로(출 25:8,22, 레 11:44, 45) 이스라엘을 일시적으로 징벌하실지라도 영원히 멸망케 하지는 않으시며 궁극적으로 구원해 주실 것임을 다시 강조합니다.

10-11절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자처럼...내시는’ 사자는 짐승 중 가장 강한 데(잠 30:30) 흔히 하나님을 상징하는 뜻으로 사용됩니다(5:14, 13:7, 겔 1:10, 10:14, 계 4:7). 특히 여기서는 일시적으로 대적(바벧론)들에게 짓밟힌 이스라엘을 되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능력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서편에서부터’ '서편에서부터'(מִיָּם, 미얌)는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바다로부터'입니다. 바다란 지중해(혹 大海)를 가리키는데 흔히 이스라엘인에게는 서쪽으로 지칭합니다(민 2:18, 수 8:9, 겔 45:9). 만약 애굽이 위치한 남쪽 및 앗수르가 위치한 동쪽등과 함께 팔레스틴의 사방 지역을 나타낸다 할 수 있습니다. ‘떨며 오되’(יֶחֶרְדוּ, 예헤르두) 기본어 '하라드'(ֶחֶרְד, 떨다, 두려워하다)의 단순 미완료형입니다. 따라서 KJV는 이를 단순히 '떨 것이다'(shall tremble)로 번역합니다. 

11절. ‘새같이...비둘기같이’ 둥지를 떠난 새가 그 둥지를 찾아 신속히 날아오듯이,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빠르게 돌아옴을 암시하는 비유입니다(시 55:6,8, 사 60:8, B.Chrisholm, F.Keil). 한편 이전에도 에브라임(이스라엘)은 비둘기로 비유되기도 했는데(7:11) 이는 어리석고 연약한 존재임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2. 여호와의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기소 The Lord’s Indictment of Israel and Judah (호 11:12-12:6)
(11:12)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나를 에워쌌고 유다는 하나님 곧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

(12:1)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하여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2) 여호와께서 유다와 논쟁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분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리라. (3)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4)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5) 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그분을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6)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11:12-12:6. 호세아서는 사랑하고 용서하시는 하나님과 죄짓고 배신을 거듭하는 이스라엘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 3:1-2을 보면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라고 했고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라고 했습니다. 은 30은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받은 돈으로 당시 남자 노예값이었습니다. 고멜은 그 반값에 그리고 보리 한 호멜 반에 팔린 것입니다. 호세아는 고멜의 몸값을 지불하고 그녀를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3:3을 보면 "그녀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자. 다시는 행음하지 말라. 그리고 다른 남자를 더 이상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고 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중심이 있습니다.

고멜을 혼내고 폭행할 수 있었던 호세아는 오히려 행여라도 고멜이 마음상할까, 자격지심에 일이라도 저지를까, 다시 뛰쳐나가지는 않을까 마음 조리며 위로하고 격려하고 감싸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죄짓고 또 죄짓기를 반복했습니다. 걸핏하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우상)을 섬겼습니다. 고멜이 다른 남자를 따라 나선 것처럼 바알, 아스다롯 등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사랑과 용서를 거듭하셨습니다. 

11:12[히 12:1].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나를 에워쌌고 유다는 하나님 곧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 히브리어 성경(맛소라 사본)에 의하면 본절은 12:1로 되어 있습니다. 70인역은 한글 개역 성경처럼 되어 있으며, 영역본 KJV, RSV, NEB등이 이를 따릅니다.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이스라엘 족속'(בֵּית יִשְׂרָאֵל, 베이트 이스라엘)은 직역하면 '이스라엘의 집'으로 번역됩니다(KJV, RSV, NIV). 그리고 '속임수로'(בְמִרְמָה, 베미르마)는 '속임', '사기' 등의 뜻입니다. 과거 속임수를 행했던 야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연상시켜 주는 표현입니다(창 27:35, B. Chrisholm). ‘유다는...정함이 없도다’ 즉 '정함이 없도다'의 히브리어 '라드'(רָד)를 어떤 의미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KJV는 ‘여호와께서 유다와 논쟁하신다 The LORD hath also a controversy with Judah’로 번역합니다. 호세아가 유다에 대해 본 구절과 같이 예언한 것은 이미 8:14, 10:11 등에서도 나타난 바 있습니다.

12:1-2절[히. 3-4절]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하여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별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양식을 먹지 않고 바람을 먹었습니다. 바람을 먹으면 허파와 위장에 바람이 잔뜩 들어갑니다. 바람이 꽉 차면 바람을 피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따르고 하나님과 함께 살려하지 않고 돌고 도는 동풍을 따라 다닙니다. 그러다가 정처도 없고 중신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바람(רוּחַ)'이란 속이 비어 있고 공허한 것, 헛된 것, 우상숭배를 말합니다(8:7). ‘동풍을 따라가서’ 팔레스틴 지역에서 '동풍'이란 동쪽의 아라비아 광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말합니다.

이는 뜨거운 열기와 함께 불어오는데, 심할 때는 모래진을 동반해 오기도 하며 곡물과 인명, 집, 심지어 지중해의 배들에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욥 27:21, 시 48:7, 렘 18:17, 욘 4:8). 이런 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이 위험한 행동, 즉 앗수르나 애굽 등과 동맹을 맺어 구원을 의뢰하는 행동을 자행함으로 스스로 멸망의 길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앗수르를 의지하여 도움을 청하고 예물 등을 보낸 사실은 이미 5:13, 7, 11:8-9, 10:6 등에서 지적되었습니다.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기름(שֶׁמֶן)'은 올리브나무 열매에서 추출되는 올리브유를 말합니다. 이는 제사용(레 2:1,2), 식용(왕상 17:12,14), 의약용(사 1:6), 향품(삼하 14:2, 시 23:5)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는데, 팔레스틴 지역에서 나는 귀한 특산품으로 여겨집니다(신 8:8, 겔 16:19, 27:17). 이스라엘이 이를 애굽에 보낸 것은 그들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예물로 보낸 것입니다(7:11).

2절. “여호와께서 유다와 논쟁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분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리라.” 호 10:11의 경우와 같이 유다와 야곱을 대구 형식으로 기술하여 당시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이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되어 있음을 책망하십니다.

3-4절[히 4-5절]. 3절.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야곱은 모태에서...잡았고’ 창 25:26의 사건을 언급하는데 이는 또한 야곱이 그의 형 에서의 장자권(長子權)을 탐하여 뺏으려 한 간교함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천사로 나타나신 하나님과 씨름한 사실을 가리킵니다(창 32:22-32). 이 사건에서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짐으로써 인간적인 무능력을 깨닫게 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는 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4절.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형 에서를 속이고 축복을 빼앗은 후 도망가던 야곱에게 벧엘에서 꿈으로 나타나셨던 하나님이 후에 다시 나타나사 야곱을 만나십니다(창 28:10-22, 35:1-15). 하나님은 이전과 달리 변화된 야곱을 벧엘에서 다시 만나셔서 언약을 체결하시고 큰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일부 영역본들은 여기에서 '우리에게'란 말을 '그에게(야곱에게)'로 수정하여 번역합니다. 즉 하나님이 '그에게(야곱에게) 말씀하셨다'는 내용으로 보는 것입니다(RSV, NIV, NEB, JB, LB). 그러나 70인역이나 벌게이트(라틴)역 등은 맛소라 사본 그대로 한글 개역 성경처럼 번역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시 야곱에게 말한 것과 같이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에게 여전히 말씀하시고 계신다는 뜻입니다(J. Calvin, J. Wolfendale, F. Keil). 이런 사실은 신 5:2, 3;29, 14,15등의 말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5-6절[히 6-7절]. “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그분을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12장의 요절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יהוָה)란 '스스로 계시는 분'이란 뜻으로서, 영원 전부터 자존(自存)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여기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과 언약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이스라엘에게도 동등한 하나님이 되신다는 뜻을 함축합니다(출 3:14,15). ‘여호와는 그분의 기념 칭호니라’(יְהוָה, זִכְרוֹ, 아도나이 지크로 the LORD is His name.)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여호와 그분의 기념 칭호'인데, 이는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 이래 이스라엘과 언약하신 하나님으로서 영원히 기억해야 할 분이심을 나타내십니다. 6절.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인애와 공의'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두 속성입니다(신 7:9;욘 4:2).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이웃간의 사랑을 행하고 법도를 지켜 공의를 실행하라고 촉구합니다. 흔히 사람이 타락하면 사랑이 식어지고 공의 대신 부패한 일을 자행하는 바, 대언자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형식을 제시함으로써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6:4, 미 6:7,8). 호세아 14:1을 보면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했고 2절을 보면 "너는 말씀을 가지로 여호와께로 돌아와서"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 다른 남자 따라다니지도 말고 다른 남자 바라보지도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 바라보고 살라는 것입니다. 

3. 거짓 저울을 쓰는 에브라임 Ephraim who uses the Balances of Deceit (호 12:7-14) 
(7) 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도다. (8)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9)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10) 내가 여러 대언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대언자들을 통하여 비유를 베풀었노라. (11)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과연 그러하다. 그들은 거짓되도다. 길갈에서는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도다. (12) 야곱이 아람의 들로 도망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아내를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기며 아내를 얻기 위하여 양을 쳤고 (13) 여호와께서는 한 대언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이스라엘이 한 대언자로 보호 받았거늘 (14) 에브라임이 격노하게 함이 극심하였으니 그의 주님께서 그의 피로 그의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그의 수치를 그에게 돌리시리라.

7-9절.[히 8-10절] “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도다.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어기고 상거래에서 거짓 저울을 사용했습니다. 부자가 되었지만 모두 남을 속여 빼앗은 것들입니다. 이렇게 하고 나서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살면서도 마치 애굽에 살던 조상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출애굽(명절날)하듯 이런 우상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길 원했습니다.

7절. ‘그는 상인이라’ '상인'(כְּנַעַן, 케나안 the trafficker)란 '가나안'을 말합니다(욥 41:6, 잠 31:24, 겔 17:4). 사실 성경에서는 가나안과 상인은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합니다(사 23:6,11). 왜냐하면 당시 가나안인들, 특히 좁은 의미에서 두로와 시돈인들이 해상 무역업을 발달시켜 많은 장사를 하였기 때문입니다(겔 27:2-36). 이들은 거짓 저울을 사용했습니다. 공평치 않게 사용하는 것은 공의를 실행치 않고 불의를 행하는 대표적 행동으로 여겨졌습니다.

율법은 공평한 저울 추를 사용할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레 19:35, 36, 신 25:13-16). 9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속받던 때부터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존재해 오셨음을 강조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보존과 형통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근거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기 중 초막절을 강조합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 광야에서 무사히 장막 속에 거하며 지냈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레 23:39-44). 하나님께서 과거에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돌보신 것같이 지금도 돌보시리라는 의미를 갖기보다는 반대로 현재 안정된 왕국을 소유하던 북왕국을 다시 광야 생활, 즉 고난과 시련의 생활로 몰아내신다는 의미를 가집니다(J. Calvin, F. Keil, B. Chrisholm).

10-14절[히. 11-15절]. “내가 여러 대언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대언자들을 통하여 비유를 베풀었노라.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과연 그러하다 그들은 거짓되도다 길갈에서는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도다. 야곱이 아람의 들로 도망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아내를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기며 아내를 얻기 위하여 양을 쳤고 여호와께서는 한 대언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이스라엘이 한 대언자로 보호 받았거늘 에브라임이 격노하게 함이 극심하였으니 그의 주님께서 그의 피로 그의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그의 수치를 그에게 돌리시리라.”

‘대언자들을 통하여’(בְיַד הַנְּבִיאִים, 베야드 하네비임) '통하여'에 해당하는 '베야드'란 직역하면 '...의 손에 의하여'입니다. '손'이란 일을 하는 수단 또는 도구의 의미로서 쓰인 것으로, '대언자들의 사역을 통하여'란 내용을 함축합니다.

11절.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אִם-גִּלְעָד אָוֶן, 임 길르아드 아웬) '임'을 의문사로 보느냐 아니면 조건어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약간 다릅니다. 한글 개역 성경이나 영역본 KJV, NIV등은 전자를 취하여 '길르앗이 불의하냐'란 의문의 뜻으로 봅니다. 반면 RSV는 후자를 취하여, '길르앗에 불의가 있다면'의 의미로 기술합니다. 그러나 어느 것을 취해도 길르앗이 불의하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입니다. 길르앗의 불의에 대해서는 이미 6:8에 지적된 바 있습니다. ‘길갈에서는...드리며’ 이스라엘인들이 벧엘과 단 등지 외에 길갈에서 우상을 숭배한 사실은 이미 4:15, 9:15 등에서 언급된 바 있습니다. 제단들이 우상 숭배로 사용되었습니다. 북왕국이 단일 예배 장소로서 예루살렘 성전을 언급한 율법과 크게 배치되는 행동을 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신 12:5 11, 18).

12절. ‘옛적에...양을 쳤고’ 야곱이 형 에서에게 불의를 행한 뒤 그를 피하여 밧단아람으로 도망가서 생활한 것을 회상한 말입니다(창 28:1-5, 29:1-30). 이는 7절의 이스라엘이 자고하고 교만한 것과는 대비되는 말씀으로서, 이스라엘의 천함, 즉 도피자이며 피고용자, 양치기였음을 드러낸 내용입니다. 이는 무가치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전적인 은혜로 돌보셨음을 말합니다. 13절. ‘여호와께서는...보호하셨거늘’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비천하게 종노릇하며 속박되었던 이스라엘을 당신의 종을 통하여 구속하시고 이후에도 보호하셨음을 가리킵니다. '대언자'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고 광야에서 인도한 모세를 가리킵니다(신 18:15,18). 14절. ‘그 피로...머물러 있게 하시며’  '그 피'란 히브리어로 '다마위'(דָמָיו, his blood)인데 직역하면 '그분의 피'(KJV)라는 뜻입니다. 죄, 불의에 대한 보응으로서(피가 상징하는 바) 생명의 대가를 당연히 받게 하시리라는 뜻입니다(레 20:16). ‘그의 수치를...돌리시리라’ '수치'(חֶרְפָּתוֹ, 헤르파)란 '벗다', '노출하다'(חֶרְפָּ, 하라프)에서 유래된 말로서 '치욕, 모욕'등의 뜻을 말합니다. 특히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한 결과로 받는 것을 나타냅니다(2:10, 4:18,1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주말 발렌타이 데이에 하나님과의 사랑을 확인하고 주님의 사랑을 회복하는 날로 만듭시다. 주님께서는 지금까지 우리를 사랑의 줄로 인도해 주시고 징벌하시며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주님과의 약속인 언약을 지켜 받을 축복을 하나도 남김없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만군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야훼)를 부를 때마다 주님과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아멘.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주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이끌어주시고 교육하시며 비전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내 속에 사랑의 줄이 있는가를 확인하며 항상 이 줄을 붙들게 하옵소서.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출애굽 시켜 주시고 온갖 무신론, 세속주의, 우상숭배, 혼란과 위험으로부터 구원하옵소서. 주님의 정의의 인애 즉 사랑의 줄로 이 나라를 인도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공부를 위한 질문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주신 이유는? (호 11:1)
2.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고 주님의 팔로 안았지만 몰랐던 것은?(11:3)
3.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에 한 일에 대해 말해보자(11:4)
4. 에브라임에 대한 사랑을 말해보자(11:8-11)
5. 여호와는 하나님의 기념 칭호임을 설명해 보자(12:5-6)
6. 에브라임의 거짓 저울과 하나님 배신을 연결해 묵상해 보자(12:7-9)
7. 하나님께서 여러 대언자들을 통해 보여주신 비유를 말해보자(1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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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를 드립시다.] 
매일 일정한 시간, 일정한 장소에서 1명 이상.
순서: 개회찬송, 기도, 성경읽기(1장), 말씀 묵상, 찬송, 나눔, 합심 기도, 주기도문

금주기도제목:
(1) 신년의 달에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며 회복되는 축복을 주옵소서!
(2) 예배를 회복하여 가정과 나라와 교회를 살게 하소서!
(3) 주님처럼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하며, 환우들을 치유하게 하소서!
[예배순서: 찬송, 기도, 성경 1장을 읽고 요절 및 중심 단어 찾아 묵상, 찬송, 주기도문, 합심기도]

2월
10일 월 찬 385장(통435)  시편 21 왕을 위한 기도
11일 화 찬 386장(통439)  시편 22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12일 수 찬 387장(통440)  시편 23 로이 하나님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13일 목 찬 388장(통441)  시편 24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의 자격
14일 금 찬 390장(통444)  시편 25 나의 혼이 주님을 우러러보나이다
15일 토 찬 391장(통446)  시편 26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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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6시부터) (Zoom으로 동시 중계)
<겟세마네TV & 로이교회 줌 참여하기>
겟세마네신학교 & 송도 로이교회 새벽기도 및 각종 행사 ZOOM 주소>
https://us06web.zoom.us/j/9991131127?pwd=YVFycnhvOEhNSmpiWFZJUTA0N0Rhdz09
회의 ID: 99 9113 1127 / 암호: 12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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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겟세마네신학교 Gethsemane Mission Seminary

◉ 겟세마네신학교 2025학년도 봄학기 신(편)입생 모집 (2월 17일 10:00개강)
경건, 학문, 선교의 기치를 걸고 1988년 미국 보스턴에서 개교한 미국 겟세마네 신학교에서 아래와 같이 2024년 봄학기 신입생과 편입생 모집을 하오니 많은 지원을 바랍니다.

1. 모집학과
▶신학사 (B.Th.) - 고등학교 졸업자, 4년 8학기 과정, 
▶목회학 석사 (M.Div) - 신학사 졸업자, 3년 6학기 과정, 졸업논문​
▶기독교 교육 혹 상담 석사 (M.C.E., M.C.C.) - 학사 졸업자, 2년 4학기 과정, 졸업논문
▶신학 석사(Th.M.) - M.Div 졸업자, 2년 4학기, 졸업논문
▶목회학 박사(D.Min) - M.Div 졸업자, 3년 6학기, 졸업논문
▶기독교 교육 혹 상담 박사(D.C.E., D.C.C.) - M.C.E. 혹 M.C.C. 졸업자, 3년 5학기, 졸업논문
▶신학 박사(Th.D.) - Th.M. 졸업자, 3년 6학기, 졸업논문
▶철학 박사(Ph.D.) - Th.D. 졸업자, 1년 2학기, 졸업논문 

2. 구비서류
입학원서 (본교 소정), 이력서, 추천서, 신앙간증서, 고등학교 졸업증 및 최종학교 성적, 졸업증명 (영문으로 1통씩), 여권 사진페이지, 여권사진 2매, 박사과정은 연구계획서, 전형료(10만원, 편입생은 30만원), 등록금(학사과정 학기당 110만원, 석사과정 130만원, 박사과정 170만원, 미국 학위신청자는 추가 학사비가 부여됨, 개별 통보)

3. 입학전형 및 주소
모든 서류제출은 2024년 2월 10일까지며, 면접시험은 2월 10일 월요일 오전 11시, 학교 (T맵 및 카카오 내비 검색: “겟세마네신학교”) 

◉ 주소: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로 398번길 11 (지하철은 성균관대 역에서 택시로 약 10분 거리)

4. 특전
1) 본교 졸업생은 노회에서 선교사, 강도사, 목사 고시 응할 수 있다.
2) 미국 신학교에서 졸업할 수 있다. 
3) 각종 장학금 혜택이 있다. (부부, 성적, 작은교회 목회자 등)
4) 해외 지원자들은 분교 혹은 온라인(유투브)으로 수업 참석할 수 있다.

5. 연락처: 010-9113-1127 (이사장), 010-3288-2878 (송인성 학장)
美겟세마네신학교 총장 윤사무엘 박사, 이사장 오선화 박사, 학장 송인성 박사

◉등록금 납부 은행 계좌번호: 신한 110 479 510 575 오선화
◉선교비나 발전기금: NH농협 302 0280 1002 11 윤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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